돈벌레 퇴치 후기

돈벌레라고 불리는 벌레를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이 글을 검색해서 들어오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적어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텐데요. 돈벌레는 바퀴벌레처럼 어느 지역에서나 나타나는 벌레가 아니라서 한 번도 보지 못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평생 살면서 못 봤는데 근 몇 년 사이에 엄청 봤으니까요. 지식인에도 사진과 함께 "이 벌레는 뭔가요?"라는 질문이 많이 올라오는 걸 보면 확실히 대중적인 벌레는 아닙니다. 돈벌레가 나오는 이유와 퇴치 후기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돈벌래의 또 다른 이름 그리마

돈벌레의 원래 이름이 그리마라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더 적은 것 같습니다. 실제 그리마라고 부르기보다는 돈벌레라는 이름을 더욱 흔하게 사용하기 때문이죠.

그리마라는 이름 덕분에 외래종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복 이후 수입이 활발해지면서 해외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요. 고가의 수입품에 알이나 유충이 섞여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값비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집에서 자주 나타나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돈벌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마 (제주도: 그리매)는 순우리말 사전에 등재되었을 만큼 예전부터 불렸던 이름입니다. 해방 이후 외국에서 유입되었다는 것은 거짓이죠. 과거부터 부잣집에 많아서 돈벌레라고 불렸다는 것은 맞습니다. 돈벌레는 따뜻하고 습한 장소를 좋아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따뜻하고 창고에 곡식도 많은 부잣집에서 많이 보였습니다.

돈벌레는 지방에 따라 쉰벌레라고도 불렸습니다. 영어로는 "house centipede"라고 합니다.

돈벌레의 생김새

돈벌레는 동물계 - 절지동물 문 - 다지아문 - 순각강(지네 강) - 그리마 목 - 그리마 과에 속해있습니다. 지네와 같은 지네 강에 포함되는데요. 생김새가 처음 보면 지네로 착각할 정도로 닮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나타나는 지네는 보통 몸이 검고 약간 윤기가 흐르며 동글동글해 보이는 반면 그리마는 납작한 형태로 연갈색에 몸과 다리에 검은 줄무늬가 있고 다리가 더 길쭉한 편입니다.

아직 한 번도 돈벌레를 본 적 없는 분들을 위해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은 빠르게 넘기시기 바랍니다.

징그러운 돈벌레
돈벌레의 모습

 

돈벌레가 나오는 이유

검색해 보면 돈벌레가 나오는 이유는 더러운 환경, 습한 환경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것과는 큰 상관관계는 없었습니다. 주로 벌레가 살기 좋은 환경에서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돈벌레의 주요 먹이가 다른 벌레이기 때문이죠.

제가 돈벌레를 처음 본 동네는 강남 서초동이었는데, 거리도 주위 환경도 깔끔하고 청결한 동네였습니다. 예술의 전당 근처라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우면산이 있었습니다. 산이 근처에 있으니 산에서 내려오는 벌레들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 이사 간 곳은 공기 좋고 물 맑은 용인의 산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전원주택이었는데, 돈벌레뿐 아니라 거미, 산모기 등 벌레 등이 많았습니다.

결국 단순히 불결한 장소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대학교 때 지저분한 동네의 반지하에 살았지만 돈벌레를 본 적이 없습니다. 불결해서 바퀴벌레나 개미가 많이 나오는 곳, 산과 가까워 벌레가 많이 보이는 곳 등 벌레가 많은 곳에서 돈벌레가 자주 출몰한다고 보입니다.

돈벌레를 죽이면 안 되는 이유

돈벌레를 죽이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돈벌레를 죽이면 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죽이면 안 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돈벌레가 해충을 포식하는 익충이기 때문입니다. 바퀴벌레 알, 모기, 개미를 엄청나게 먹어치우고 나방도 주요 먹이 중 하나입니다. 거미 역시 익충인데 거미도 잡아먹습니다. 하루에 먹는 양이 상당해 돈벌레가 있는 곳에서 바퀴벌레가 없다고 하죠.

그럼에도 죽여야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돈벌레의 징그러운 외모 때문이죠. 바퀴벌레와 돈벌레 중 무엇과 함께 사는 게 좋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퀴벌레와 돈벌레 둘 다 혐오스럽습니다. 작은 날파리를 봐도 기겁을 하는 저희 아내에게 돈벌레는 혐오의 끝판왕급이었습니다. 전원주택에서 삶이 좋았지만 다시 들어가기 꺼려지는 이유 중 BEST 3위 안에 돈벌레가 있으니까요.

돈벌레 퇴치 후기

돈벌레 박멸을 꿈꾸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실패했습니다. 제가 시도한 방법을 공유해 드리니 저를 타산지석 삼으시기 바랍니다.

습한 곳을 좋아한다고 해서 제습기를 틀고 매일 아침저녁 환기를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그 녀석은 한겨울에도 출몰했습니다.

다른 벌레가 있는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원주택의 정원 곳곳에 사이퍼 킬이라는 살충제를 2주 간격으로 살포해 봤습니다. 한여름에 2달 동안 뿌려봤지만 계속 나타났습니다. 살짝 빈도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크게 줄어든 느낌은 없었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하루 2번 청소를 할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어서 집안의 청결은 충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돈벌레는 집 안이 아니라 집 밖 또는 벽 사이, 음습한 곳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집을 청소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대부분 밖에서 유입되기 때문이죠.

집의 틈새나 방충망을 막아 보려고 했지만 전원주택은 집이 커서 틈새를 확인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전 집은 빌라였는데 벽에 갈라진 틈을 보진 못했습니다. 지네보다 몸통이 얇다 보니 걸레받이 틈새로 들어가서 사라져 버리는데요. 그것을 보고 웬만큼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쉽게 드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수구를 통해 들어온다고도 하니 유입되는 통로를 막는 것은 어렵습니다. 집은 알게 모르게 작은 틈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집안의 벽과 틈새가 있을 법한 곳 여기저기에 뿌리는 살충제를 뿌려 보았지만 역시 실패였습니다. 바퀴벌레, 개미 약들 먹는 약도 가져다 놔봤으나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인터넷에 보면 계피 물을 놓으라고 하는데 사실 너무 얼토당토않은 방법이라 생각해 시도조차 안 했습니다.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경험했다면 터무니없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 서 말했듯이 돈벌레는 집 외부에 살아서 집 안에서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돈벌레 죽이는 요령

결국 돈벌레 퇴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빠르게 죽이는 요령은 터득했습니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전기 파리채입니다. 갖다 대기만 하면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몸이 오징어처럼 말리며 바로 즉사합니다. 빠르지만 의외로 가까이 갈 때까지 정지 상태로 있는 경우가 많아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살충제도 즉사를 시킬 수 있지만 벽지에 살충제가 묻는 게 싫어서 초반에만 사용했습니다.

손으로 터트려 죽이는 방법이 제일 좋지 않습니다. 죽으면서 엄청난 액이 튀어나오는데 벽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대략 2~3cm 거리에 손이 가까이 오면 달아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잡다가 놓치면 다리만 후드득 떨어지고 도망가는데 그 모습도 매우 혐오감을 일으킵니다.

방역 업체를 이용한다면?

세스코와 같은 전문 업체를 이용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마의 먹이가 다른 벌레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먹이가 되는 벌레를 없애면 박멸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세스코의 Q&A를 찾아봐도 그리마 퇴치 관련 답은 없고 청결히 유지하라는 매크로 답변만 있는 것으로 보아 직접적인 퇴치법은 없어 보입니다.

 

일부 사례를 보니 지속적으로 전문 방역 업체를 통해 해충을 구제하면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숨고나 세스코 또는 저렴한 지역 방역 업체라도 한번 상담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통상 인터넷에 떠도는 돈벌레 퇴치 방법으로는 전혀 효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5년간 돈벌레와 살며 그냥 눈에 익숙해지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물린 적은 없습니다. 물리더라도 살짝 가렵기만 할 뿐이라고 하니 무서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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