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투자에 영향을 준 경우가 최근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제대로 폭격을 당했습니다. 몇 십년 만의 전쟁 이벤트라 많은 투자자들이 수 많은 시나리오들을 내놓았습니다. 국내외 애널리스트들, 각종 토론방, SNS는 전쟁을 할 경우와 아닌 경우의 수를 두고 갑론을박이 넘쳐났습니다.

 

이번에 폭락하면 저점에 줍겠다는 사람들, 폭락을 이용해 숏 포지션으로 대박을 내겠다는 사람들... 전쟁이 안나면 반등에 배팅하겠다는 사람들 등등 이번 이벤트에서 한 몫 크게 잡고 싶어하시더군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니 갑자기 오징어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스포가 있으니 안보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인간의 잔혹함과 투자

오징어 게임에서 VIP가 경기를 직접 참관하는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마치 중세 로마시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곳에서 귀족들이 콜로세움을 즐기듯 경기를 구경합니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마치 가상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건조한 자세로 지켜보죠. 그리고 쉽게 100만 달러를 베팅합니다.

 

커다란 유리로 단절된 세계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베팅하는 사람들이 사람처럼 느껴졌을까요? 아예 자신들과는 완벽히 격리된 다른 존재로 인식되고 따라서 그들의 고통이 전혀 공감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 전쟁이 발생한 상황에서 저의 주된 관심은 주식이나 코인이 오를지 떨어질지, 더 크게 확전되면 어떤 자산까지 영향을 받을지였습니다. 전쟁이라는 누군가의 생사가 달린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VIP 처럼 말이죠.

 

우리는 종종 유튜브나 티비 속에서 집을 잃고, 터전을 잃고, 가족을 잃는 모습을 다른 세상 이야기로 착각하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감독은 말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해 주인공 기훈이 첫 회 경마에 열광하는 것과 징검다리의 사람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VIP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징어 게임의 VIP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는 그들처럼 부자도 아닌데 말이죠.

 

예전 어떤 트레이더는 선물 숏 포지션으로 많은 돈을 벌다가 문득 누군가의 고통을 통해 돈을 버는 자신이 너무 가증스럽게 느껴져서 다시는 숏 매매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그 사람도 문득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처럼 머리로 생각하기 보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느꼈겠죠.

 

제가 앞으로는 전쟁의 고통에 함께 공감하려 노력하겠다느니 공매도 포지션을 멈추겠다느니 하는 것을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무심코 그리고 어쩌면 건전하다고 생각되는 투자 행위가 때로는 참으로 잔인한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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